밤 장터, 멍석에 산가지를 펼친 판수의 등 뒤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

눈 없는 판수의 문답록에서

1890년대 말, 경기 안성.

남사당패를 따라 장터를 도는
눈 없는 판수가 있었다.

판수 (1839~1897).

일곱 살에 눈을 잃고,
열세 살부터 산가지로 사주를 셌다.

장이 서면 그의 멍석 앞에는
늘 줄이 길었고,

한 해 뒤 “맞았다”며
곡식을 이고 찾아오는 이도 많았다.

낯빛을 볼 수 없으니,
듣기 좋게 말을 고르는 법도 없었다.

그렇게 장터를 돌다,
1897년 봄 길 위에서 죽었다.

마흔다섯 해의 문답록은
마지막 한 장만 비어 있었다.

“이 자리는
아직 오지 않은 손님의 것이다.”

장터마다 흩어진 문답을,
삼 년 동안 한 장씩 모았습니다.

이 문답을 받는 일이 곧
그 빈 자리에 앉는 일입니다.